사회비평

판공비 타령

운정서실 2017. 6. 13. 12:30

판공비 타령


   2017년 6월 특수활동비를 잘못 쓴 죄로 검찰간부 두 사람에 대한 징계면직처분이 청구 되었다. 특수활동비를 직원들과 회식하고 격려금을 주는 데 쓴 것이 죄목이라고 한다. 특수활동비는 원래 그런 목적에 쓰는 것이 관행이었던 모양인데 이번에는 죄가 된다고 하였다. 미운 털이 박힌 사람에게 그런 일로 죄를 묻는 조치는 대중의 환호를 받을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내막을 아는 사람들의 환멸 냉소 사기저하는 적지 않으리라. 이를 계기로 판공비의 문제, 원칙에 대한 다양한 예외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느 조직에서와 마찬가지로 공무원들에게는 보수 이외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여러 가지 돈이 지급된다. 그 중 한 가지가 예전 말로 판공비(辦公費)이다. 지금은 업무추진비, 기관운영비, 특수활동비, 기밀비 등으로 불린다. 판공비가 국어사전에는 공무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 또는 그런 명목으로 주는 돈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제도의 공식적 선언에 부합하는 정의라고 볼 수 있다. 판공비를 배정받은 사람은 그의 재량으로 또는 임의로 증빙서류 없이 사용할 수 있지만 용도는 공무에 한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무에 사용해야 한다는 용도한정의 조건이 문제이다. 그런 조건의 판단에는 주관적 해석이 크게 작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조건 충족 여부를 감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공무관련성을 넓게 해석할 경우 다소간의 사적 사용도 용납될 수 있다. 이를 좁게 해석하는 경우 돈을 임의로 지출할 길이 거의 막히게 된다.

   판공비는 순수하게 문자 그대로 공무수행을 위해서만 쓰일 수도 있고, 공무를 위한 지출인지 개인적 지출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모호한 용도에 쓰일 수도 있고, 거의 개인적인 용도에 쓰일 수도 있다. 개인적 목적의 사용이라 하여 말썽을 빚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지출의 예로 직원들이나 친지 등의 경조사에 부조금을 내는 일, 부하들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해 회식의 비용으로 내는 일 등을 들 수 있다. 개인적 목적에 판공비를 쓰면 안 된다는 공식적 규범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판공비의 실제 모습은 여러 얼굴을 지니고 있다. 업무수행경비 또는 실비변상적 경비라는 얼굴도 있고 직무가급적 수당이나 생계보조급적 수당과 같이 쓰일 수도 있는 숨겨진 보수라는 얼굴도 지녔다. 판공비의 실비변상적 요소는 공식적인 얼굴이다. 그런데 판공비는 숨겨진 보수라는 비공식적 얼굴을 또한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다. 이 비공식적 요소  때문에 그 운용이 어렵고, 걸핏하면 말썽이 난다. 판공비의 비공식적 사용은 별일 없을 때는 묵인되지만 그것은 공직자들이 뒤집어쓰는 먼지가 된다. 그래서 털면 먼지 안 날 사람 없게 되는 것이다. 판공비 남용의 위험은 바로 공직자에 대한 통제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평소에는 문제 삼지 않던 판공비 사용에 불리한 해석을 붙여 밉보인 사람을 찍어낼 수 있다. 알아서 쓰라고 준 돈을 알아서 쓴 죄를 물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공무원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지출의 재량권이 처벌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때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막막하다. 이건 밝히기 거북한 현실이다.

   판공비라는 모호한 지출의 역사는 아주 길다. 오용의 말썽이 그치지 않는 이 제도가 필요해서 생겨났을 것이며 오래 유지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부조직에는 일하고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업예산, 조직유지경비, 보수, 실비변상 등 수많은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판공비는 그런 '딱딱한' 경비치출들의 틈새를 부드럽게 메워주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이런 윤활유에는 독소가 있다. 독소란 오용·남용의 위험을 말한다. 오용·남용의 위험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판공비의 개폐를 주장한다. 개폐의 방법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거론된 것은 판공비 지출 방법과 대상의 엄격한 통제이다. 증빙서류를 첨부하게 한다든지 지출내역을 공개하게 한다든지 하는 방법들이 통제 강화의 수단으로 제안되어 왔다. 보다 급진적인 방법으로는 판공비 예산을 다른 사업비와 같이 취급해 사업비 지출절차를 따르게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판공비를 보수체계에 편입하고 보수의 일종으로 지급해서 말썽의 소지를 없애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판공비를 사업예산으로 또는 보수예산으로 개편하는 것은 판공비를 없애는 방법이다. 이런 편입조치 없이 판공비제도를 아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개선방안들은 모두 판공비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지출방법과 지출대상을 투명하게 통제하자는 방안도 판공비 본래의 취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폐지방안과 별반 다를바 없다.

   판공비는 공무원들에게 지급되는 예외적 경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예외는 원칙을 보완한다. 정부를 운영하는 데는 원칙적 제도뿐만 아니라 예외적 제도가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에는 예외적 제도들이 많다. 인사행정분야에서 예외적인 것은 판공비뿐만이 아니다. 봉급이라는 원칙적 급여 외에 여러 가지 수당이라는 예외적 급여가 있다. 임용에서는 공개경쟁채용이라는 원칙적 임용방법 이외에 특별채용(경력경쟁채용 등)이라는 예외적 임용방법을 인정한다. 차별철폐를 위해 역차별을 무릅쓰고 여러 가지 임용우대제를 운영한다. 우대임용은 임용평등주의에 대한 예외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대한 예외다. 유연근무제의 여러 방법들은 원칙적 근무방법에 대한 예외이다. 시간외근무나 휴일근무는 표준근무시간제에 대한 예외이다. 재무행정분야에서도 원칙에 대한 예외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비비예산은 그 단적인 예이다. 수정예산이나 추가경정예산은 본예산이라는 원칙에 대한 예외이다. 예산의 이월이니 이용이니 하는 것도 역시 원칙에 대한 예외이다. 비공식적으로 여기저기 숨겨진 예산도 예산공개의 원칙에 대한 예외이다. 정부조직에 붙어 있는 참모조직들은 계서제에 대한 예외이다. 지방자치단체라는 원칙 이외에 특별지방행정기관이라는 예외가 있다. 이런 것들은 정부 안에 있는 수많은 예외의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인간사에서 원칙에 대한 예외의 인정은 불가피하다. 사람 사는 데는 언제나 예외가 있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고 말한다. 신의 세계에는 예외가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세계에는 예외가 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예외는 원칙의 무리 없는 운행을 돕는다. 원칙에 예외가 따라다니지 않으면 사람들 하는 일이 잘 굴러가지 않는다. 인간세상의 한 부문인 정부도 별 수 없이 많은 예외를 안고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헤쳐 나간다. 지금의 정부개혁사조는 오히려 더 많은 예외를 만들려는 것이다. 개혁사조의 주류는 정부조직의 유기체화·연성화·유연화를 통한 적응성고도화를 처방한다. 딱딱한 것보다 부드러운 것을 찾는 개혁처방들은 예외의 증가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외보다 원칙을 선호한다. 원칙은 좋은 것이며 예외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는 막연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예외는 깔끔하지 않고 거치적거리고 정돈된 질서를 어기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예외는 무엇이가를 어긴다거나 위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예외라는 말을 듣고 변칙, 특혜, 특권을 연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원칙의 경우보다 예외의 기준과 한계가 더 모호한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만큼 오용과 남용의 위험은 더 커진다. 원칙대로 하겠다는 말은 흔히 갈채를 받는다.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이나 법조인들은 원칙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 "원칙대로 하겠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 등등의 말을 자주 한다. 그들은 누구의 원칙이냐를 설명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예외의 존재가 빚어내는 복잡성과 혼란 그리고 예외의 탈선을 개탄하는 사람들은 예외 전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기 쉽다. 복잡한 세상사를 덜 겪어본 사람들일수록 원칙 고수에 더 집착한다. 순수한 열정은 원칙 고수로 통한다. 대중적 인기를 얻으려는 정치인과 행정인들은 예외에 대한 통제를 표방한다. 정권마다 출범 초기에는 예외를 봉쇄하려는 여러 선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 예외의 일탈과 그로 인한 관기문란을 바로잡아보겠다는 시도는 좋으나 예외의 통제가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예외적 제도와 관행을 설치한 당초의 목적부터 성찰해야 한다. 일탈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많은 경우 흐리멍덩한 예외적 제도와 관행을 만들고 유지하는 이유부터 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재량행위의 투명성을 어느 정도 요구할 것인지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난제이다. 예외의 통제 또는 폐지가 서툴고 지나쳐서 쥐 잡다 독 깨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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