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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분리불안장애

운정서실 2021. 5. 2. 13:33

   2021년 4월 30일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 19 백신 접종 두 차례를 마쳤다. 접종과정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다. 주민복지센터(동사무소)에 모인 노인들을 안내원이 친절하게 모시고 버스에 태워 접종장소에 까지 가서 접종 절차를 마친 뒤 다시 버스에 태워 출발장소까지 대려다 주었다. 십여 명에 불과한 참여자들이 대형버스에 탔으니 자리가 모자란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가고 오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안내원들이 포진해 있었고 인원점검은 철저히 했다. 따라간 노인들이 길을 잃거나 버스를 노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뒤처진다고 백신을 못 맞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부터 내 이야기의 단초가 열린다. 따라간 노인들이 단계별로 이동할 때마다 몹시 서두르는 것을 보았다. 노인 중에서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사람들일수록 서두르는 모습이 더 확연했다. 버스를 타러 갈 때마다 허겁지겁 앞사람을 제치고 안내원의 꽁무니에 붙어 걸었고, 접종장소에 들어갈 때는 먼저 맞으려고 잽싸게 행동했다. 어떤 연령층의 사람들이든 좌석이 지정되어 있는 장소 또는 운송수단 등에 들어가면서 먼저 들어가려고 서두르는 풍경을 흔히 보지만 노인층에서는 그런 행동성향이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같이 행동해야 하는 무리에서 떨어지고 안내원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잊히고 버려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잠재의식적 공포심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노인들의 이 '서두름'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며 다양한 관점과 개념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근래 얻어들은 '분리불안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이 개념은 좋아하는 사람, 자기를 보호해 주기 바라는 사람과 떨어지는 것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 때문에 빚어지는 병적 증상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로 소아정신과에서 쓰이는 말이라고 하지만 노인들의 이상행동을 설명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늙으면 애같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남성 노인들에게서 애같이 되는 모습이 더 많이 관찰된다. 우스갯소리지만 이삿짐차에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타고 기다린다고 한다. 버리고 갈가봐. 할아버지들은 아내가 어디 가면 어디 가느냐 꼬치꼬치 묻고 따라가려고 보챈다고 한다. 바쁜 자녀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노상 징징댄다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다소간에 분리불안의 감정을 품고 살겠지만 그게 지나치면 무슨 장애 또는 증(症: disorder; disease)이라는 병명이 붙게 된다. 사람이 늙어갈수록 분리불안의 정도는 커가는 것 같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공포일 수밖에 없다. 그걸 다스리는 일은 노령층의 현안이다. 사람들은 분리불안을 이기기 위해 마음의 수양을 권하는 등 여러 가지 명언과 교묘한 방법들을 고안해 왔다. 죽음조차도 이 세상에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곳을 향해 스스로 이 세상을 버리는 것이라 생각하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그래서 죽는 것을 기세(棄世)라 표현함으로써 내가 세상을 버리는 것이라고 위안을 삼으려 했다. 종교에서는 소천(召天)이니 귀천(歸天)이니 열반(涅槃)이니 하는 말을 써서 죽음으로써 사람이 버려지는 것이 아님을 설득하려 애썼다. 환생(還生)이라는 말을 써서 되돌아온다는 생각을 갖게도 한다.

   인간들의 여러 고안에도 불구하고 분리불안감을 끝내 이기지 못해 병적 증세를 노출하는 늙은이들이 적지 않다. 분리불안증의 표출 양태는 다양할 것이다. 흔히 노욕이니 노탐이니 하는 것도 그중 한 양태라고 생각한다. 노욕의 심층심리에는 분명 분리불안장애가 자리 잡고 있으리라.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잊히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노욕의 한 전의식적 동인(前意識的 動因)이 아닐까 싶다. 노욕 때문에 먼 길을 헤매는 늙은이들에게서 어떤 불안증상이 느껴진다. 보람 없는 일로 허명을 탐하면서 젊음을 보낸 사람들일수록 분리불안장애와 노욕 증세가 심한 것 같다.

   욕구는 인간의 중요한 속성이다. 욕구가 있기에 인간인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욕구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욕구의 발로는 건강해야 하며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염치를 차리려고 하는 욕구의 발로도 함께 있어야 한다. 방향이 잘못 되고, 그 정도가 지나친 노인들의 욕구 발로를 노욕이라 해서 지탄하는 것이다. 노욕은 자기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해롭다.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노욕을 억제할 수 있는 정신수련을 계속해야 한다.

   내 자신도 내 안에 잔화(殘火)처럼 남아 있는 노욕 부스러기들을 다스리기 힘들 때 속이 상한다. 아직도 탈진(脫塵)을 못하니 한심한 것이다. 말년에 행복하려면, 마지막에 가장 크게 웃으려면 노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터인데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