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유한하다. 그러니 인간의 지각(知覺: perception) 또는 인식력(認識力: cognitive faculty)에도 한계가 있다. 불완전한 인간은 지각의 과정에서 착오(錯誤)를 범하면서 산다. 사람들이 착오를 범한다는 것은 오관(五官)이 감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착오는 감각한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고 해석하지 못하는 오류이다.
고향이 어디냐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어느 지역 출신은 좋고 다른 지역 출신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착오를 품고 평생 살 수도 있다. 첫인상이 좋거나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훌륭한 인격자일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까지 밉다는 말도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때때로 맞지만 틀릴 때도 많다. 틀린 경우는 착오 때문이다. 자기와 유사한 사람을 좋아해 유유상종하는 것도 착오 때문일 수 있다. 자기가 기다리던 소식이면 그 정확성을 따지지 않고 믿어버릴 수 있다. 같은 떡인데도 항상 남의 떡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기심과 열등감이 클수록 남의 떡이 더 크다고 징징거린다. 그런 사람들은 분배의 공정성을 늘 의심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키가 작은 사람이 키 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따로 있을 때보다 더 작게 보인다.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듣고 불리한 이야기는 외면함으로써 편향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서투른 숙수 안반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자기 솜씨 없는 건 생각하지 않고 조리도구의 허술함만 탓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려고 저지르는 착오가 있다. 일이 잘되면 내 공로이고 내 능력 때문이라 치고, 일이 잘못되면 남의 탓이거나 외적 조건이 나쁜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남의 탓 풍조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 잔뜩 추켜세워진 국민은 자기 권리에는 민감하고 책임에는 둔감하게 되었다. 책임져야 할 일은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착오가 범람하고 있다. 자기 탓인데도 정부 탓이라고 목청을 높여 우기는 인구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경우 착오인지 고의적인 왜곡인지가 불분명하기는 하다.
인간은 착오 때문에 잘못된 결정을 하고, 실수를 한다. 보통의 생활인들도 착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착오로 인해 심리적 손상을 입을 수도 있고, 착오 때문에 잘못된 태도와 행동을 표출할 수도 있다. 착오 때문에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타인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착오를 유발해 이득을 보려는 범죄가 많다. 인생의 실패 이면에는 대개 착오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절대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종교에서조차 종파(宗派)가 갈리고, 사람이 사람에 관해 엄밀한 이야기를 한다는 사회과학에서도 사회의 사태(事態)에 대한 학설이 갈린다. 착오 때문일 것이다.
인류는 지각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 왔다. 과학은 인간의 착오를 통제하려는 노력을 주도해 왔다.. 종교나 철학은 인간의 지각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문제,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천착하기도 한다.
착오를 극복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착오의 해로운, 부정적 기능을 표적 삼는 것이다. 부정확한 지각, 지각과정의 착오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전제하에 착오를 물리치는 방법을 탐구해 왔다. 그러나 무해무득한 착오, 바람직한 착오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착오에 대한 가치판단은 상황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착오라도 상황에 따라 해로울 수도 있고, 이로울 수도 있다.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착오를 완전히 극복하는 날은 요원하다.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다. 인류의 그런 운명이 천만다행인지도 모른다. 인류사회는 착오를 범할 수 있는 인간을 전제로 형성되어 있다. 착오의 바닷속에서 살아온 인간을 거기서 건져낸다면 인간은 살기 힘들어질 수 있다. 꽃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살던 사람들이 꽃의 분자, 꽃 속의 오물과 세균까지 정확하게 인식하는 지각능력을 갖게 된다면 그게 과연 축복일까. 젊은 연인들이 서로 ‘콩깍지’가 씌는 착오를 범하지 않게 된다면 인생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려는 정책은 얼마나 큰 장애를 만나겠는가.
사람들은 지각의 착오를 일부러 불러와 마음의 평온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일체가 유심조(唯心造)라는 말로 비관적인 상황인식을 낙관적인 것으로 바꾸려고도 한다. 술의 힘을 빌려 착오를 만들고 고민에서 헤어 나오려고도 한다.
사람들의 착오를 체계적으로 이용해서 정당한, 그리고 인간생활에 도움 되는 일을 할 수 있다. 인간의 착오를 원자재 삼아 산업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마술은 지각의 착오를 활용하는 직업이다. 사람들은 마술을 보면서 착오를 즐긴다. 화장품 산업은 여인들이 아름답게 보이려는 것을 돕는 착오조력산업이다. 화장품은 아름답게 보이려는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의 도구이다. 인상관리는 다소간에 상대방의 착오를 유발한다. 영화는 정지화면을 연속적으로 바꿈으로써 화면 속의 현상이 운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사람들은 정지화면이 연속적으로 바뀌면 활동사진(motion picture)으로 인식한다. 시각정보의 해독과정에서 착오가 없다면 불가능한 산업이다.
지금 인공지능의 세상이 된 듯 떠들썩하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착오산업은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하겠지. 그로 인한 폐단도 커지겠지. 정보기술이 발전할수록 착오유발기술도 발전할 것이다. 그에 맞서는 착오통제기술도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착오통제기술의 발전은 착오유발기술의 뒤를 쫓는 수준에 머무를 것이다.
효용과 폐단이 뒤섞여 있어서 단정적 평가가 어려운 착오유발행위들도 있다. 알면서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착오유발행위들도 있다. 광고산업은 소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런데 대개의 상업광고에는 착오유발제(錯誤誘發劑)가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아름다운 여인이 광고하는 음료는 맛있을 거라는 착오를 유발하려 한다. 사람들은 그런 착오유발제를 어렴풋이 간파하면서도 속는 것이니 누굴 탓하기 어렵다.
선동선전술은 정치의 도구이다. 정치적 대국민 의사전달을 설명할 때 홍보라는 말 대신 선동(demagogy)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정치집단들의 선동선전활동은 강력한 착오유발제를 포함한다. 속임수라 하여 이를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치적 선동선전에 아무도 넘어가지 않는다면(착오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찌 될 것인가. 정치라는 것이 설 자리가 있겠는가. 만일 대중의 착오유발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가 가능해진다면 기존의 정치이론들은 모두 재처리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래저래 착오와 헤어질 수 없는 삶을 영위한다. 물론 해로운 착오는 막는 것이 옳다.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착오가 완전히 없어진 세상을 만들기는 어려울 터이니 믿음이나 주장의 절대화는 조심해야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여벌의 생각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래야 한다. 착오로 인한 리더십의 아집은 공동체를 망치는 화근이 될 수 있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그 실천은 어렵다. 이 또한 인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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