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한하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민주주의에도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는 일정한 한계(제약조건: constraints) 내에서만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원리이다. 법리적·이념적 한계가 있다. 그보다 더 쉽게 알 수 있는 한계는 인지상정과 사회상규가 설정하는 한계이다. 상식적인 한계라고 흔히 말하는 한계이다. 이런 여러 한계를 벗어나는 민주주의는 표방된 것일 뿐 실제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인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반이다. 자유의 신장은 민주주의의 이상이다.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쓰이는 수단 중 대표적인 것은 다수결이다. 민주주의가 보장하려는 자유와 다수결의 원칙에는 엄중한 한계가 있다. 자유와 다수결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다.
국민이 자유의 한계를 부정하고, 다수파가 다수결의 한계를 부정하고, 다수결로 못할 일이 없다고 믿는다면, 정치의 외형적 절차는 민주적인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정치의 실질은 민주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무소불위, 무소불능인 다수결을 민주적이라고 하는 것은 견강부회이다.
이런 가상적 예를 놓고 재론해 보자.. 유권자인 국민이 다수결로, 또는 만장일치로 절대군주제(絶對君主制)를 수립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게 과연 민주정치체제일까. 국민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결정했으니 민주정부라고 강변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국호(國號)는 ‘민주주의 왕국’이라고 하자는 주장도 나오겠지. 옛날의 군왕들은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내걸었다. ‘민주적 방법’(다수결)으로 왕이 된 사람은 ‘왕권민수설(王權民授說)’을 내세워야 하겠지. 왕권민수설은 왕권신수설보다 월등히 더 무섭다. 왕권을 신이 허락해 준 것이라는 주장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관념이다. 국민이 왕권을 주었다는 주장은 국민이 투표로 증명해 줄 수 있고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에 더 무섭다고 하는 것이다. 왕권민수설 아래서 그야말로 ‘위대한 국민’은 거의 신격화하는 수준의 찬양을 받겠지. 오직 국민만이 하늘 아래 모든 결정을 할 수있다는 말을 듣겠지.
그러나 그런 찬양은 구두선(lip service)일 뿐이라는 게 곧 밝혀진다. 국민이 만든 왕조 하에서 국민의 정치적 발언권은 소멸되고 말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이 짓밟혀도 그건 국민이 자원한 것이라고 규정되겠지. 국민이 기쁜 마음으로 탄압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말이지. 소수파에 대한 탄압은 국민의 지엄한 명령이라고 말하겠지. 민주적 정치체제의 골격이 되는 제도들을 무너뜨려도 그것은 국민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하겠지. 그런 이상한 세상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민주주의, 자유, 다수결의 한계를 알고 지키자는 이야기 아닌가.
산업혁명 이후 등장한 독재국가들은 대개 국민의 지지를 업고 출범했다. 평론가들이 앞다퉈 비난하는 우리의 ‘유신체제’도 국민투표의 결과였다. 그런데도 유신체제를 국민이 만들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평론가들도 국민의 책임을, 국민의 잘못을 거론하는 것은 꺼린다. 국민이 실제로 참여하는 투표에서 언제나 100% 투표에 100% 지지를 받는 전제국가도 이 지구상에는 없지 않다. 그런 나라에서 국민은 자기들이 독재를 주도한다는 환상을 처음에는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국민이 독재의 대상(객체) 임을 체감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국민이 전제체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국민이 피를 흘려야 한다.
독재정권을 타도하겠다고 일으킨 혁명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성공한 ‘혁명가’들이 자기들 스스로 다시 독재체제를 수립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결국 하나의 독재를 다른 독재로 교체하려고 기도했던 혁명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심을 사게 된다. 민주화를 외치던 혁명가들은 다른 사람들의 독재를 제압하고 숙청하기 위해 자기들의 독재가 필요하다고 말하겠지. 남이 하는 독재는 그냥 독재이고, 자기가 하는 독재는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노력이기 때문에 국민이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겠지. 권력이란 그런 거다. 권좌(權座)를 차지하고 나면 초심과 다른 딴마음이 생길 가능성(위험성)이 아주 높다. 처음부터 내심으로는 권좌를 빼앗아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예부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권력게임 달인들의 속은 더 알기 어려울 것이다.
추상적 관념으로서의 국민에게는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다. 책임이 없다기보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국민은 자기 책임을 스스로 물을 의욕이 없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자신의 허물을 가리는 데 국민이라는 이름을 활용한다. 그럴 때에 국민이라는 이름은 가공적(架空的)이라는 느낌을 준다. 공허한 이름이다.
세력감에 들뜬 다수 대중이 민주주의를 사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몰려갈 때 이를 말릴 수 있는 마땅한 방책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인간은 자살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런 인간이 만든 민주주의는 인간을 닮았다. 민주주의는 ‘민주적인 방법’으로 자살할 수 있다. 자폭하도록 이끄는 유혹도 크다. 민주주의가 자살하는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마무리해 주는 것은 외부의 주먹(폭력·무력)인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는 염치있는 사람들을 위한 축복이다. 민주주의가 몰염치를 만나면 화근(禍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