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인간이 지금까지 개발한 최선의 정치원리이지만 약점도 많고 상처 받기도 쉬운 원리이다. 민주주의는 때때로 입은 상처의 치유에 무력한 원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성공은 인간의 이성적 행동을 전제한다. 민주주의가 비이성적 행동자들을 만나면 염증을 일으키고 파탄을 초래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비이성적으로 운영되고 방종을 조장하면 강압세력 등 비민주적 책동세력에 빌미를 만들어줄 수 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핵심적 도구이다. 다수결은 의사결정의 주도세력을 만들어준다. 다수(majority)는 국정을 주도하는 힘을 얻는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다수를 만나는 것은 한 나라의 행운이다. 다수가 공익우선의 원칙을 잊지않고, 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 할 수 있는 일과 일하는 방법의 한계를 올바로 인식한다면 민주주의는 순항한다. 그러나 다수가 자기 이익중심의 국지주의(parochialism)에 빠지고, 권력의 건전한 한계를 잊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세력감에 도취해 무리한 밀어붙이기를 자행하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민주주의는 다수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쉽다.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안 된 다수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다수의 오만과 방종을 유발 또는 유혹하는 길은 넓고 다양하다. 오랫동안 핍박을 받았거나 비주류의 설움을 겪고 다수를 형성한 세력이 보복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를 손상할 소인을 처음부터 품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수를 숙청대상으로 규정하고 기득권세력을 적대시하는 자세를 버리지 못한다면 민주주의가 원래 꿈꾸는 사회의 구현은 어려워진다. 소수의 저항에 부딪치면 다수는 소수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키우게 된다. 명분으로는 개혁이라 쓰고 마음속으로는 보복이라 읽는 일들을 더 많이 저지르게 된다.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워 다수의 위력으로 정책들, 특히 자기진영의 이익증진을 위한 복심을 깔고 있는, 표리가 다른 정책들을 밀어붙여 성공하면 그 학습효과가 크다. 점점 통이 커져서 무리한 일들을 저지르게 된다. 다수의 세력감과 일탈적 의지 관철은 에스컬레이트된다. 일탈의 에스컬레이션은 견제되기 어렵다. 잘못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불법을 저질러도 늘 감싸주고 응원해주는 다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수가 위력을 과시하는 것과 집착형 팬클럽의 응집력은 상승 작용한다. 팬클럽의 일편단심은 굳건해지고 그 행동은 점점 더 격렬해진다. 소수독재에 의한 억압은 은밀하지만, 다수의 횡포는 뻔뻔하다.
다수의 오만과 일탈은 그 주류세력, 인그룹에서도 저질러지지만 주류에 기생하는 곁가지들의 일탈과 횡포가 많다. 그런 곁가지들의 횡포가 더 무섭다. 천박한 이끗을 노려 다수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주변인들의 일탈은 장기적으로 주류에 해를 입히지만 당장은 자기편을 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감싸게 된다. 곡학아세와 아유구용의 변설과 처세를 통해 일탈을 일삼는 주변인들은 주류의 앞잡이로서 희생적인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유상종으로 결집한 앞잡이들의 세력(票)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주류가 그들을 내치지 못하는 일면도 있다. 다수가 오만해질수록 주류보다 더 설치는 앞잡이들은 늘어난다. 소수 독재자의 앞잡이나 다수의 앞잡이나, 앞잡이의 폐해가 더 크다. 앞잡이들이 온갖 궤변으로, 상대의 부아를 돋우는 저속한 언어로, 다수를 비호하는 듯 보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국 주인에게 해가 된다. 민주주의를 해친다. 권력에 취한 주인들은 이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방치한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도구라면 퍼주기식 포퓰리즘은 다수 형성의 한 도구이다.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러나 손쉬운 도구이다. 경쟁적 퍼주기로 국고를 탕진하고 나라빚을 누적시켜놓으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구현하려는 이상향과는 배치되는 사태를 빚게 된다. 빚의 덤터기를 쓰게 될 후속세대는 민주주의의 효용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소수가 다수의 이익을 희생시키면 불공정이라고 규탄하지만 다수가 소수의 권익을 해치면 평등이요 정의라고 강변하는 것이 다수의 사고방식이기 쉽다.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에 대한 퍼주기를 도모하면 비교적 저항도 적고 사회적 형평을 추구한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헌법정신에 반하는 수준까지 그런 시책을 강행하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뼈대에 손상을 줄 수 있다.
다수의 자기이익중심적인 비이성적 행동, 소수를 숙청대상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국가의 분열을 극단화한다. 정치세력 간의 대결과 투쟁을 극단화한다. 정치세력 간의 타협 없는 제로썸 게임은 악순환한다. 가혹한 승패만이 되풀이된다. 정치로부터 출발하는 불신풍조를 만연 시킨다. 정치적·사회적 비효율과 낭비를 빚는다. 사회 전체에 가치혼란을 조성하고 무규범적 행동을 조장한다. 사회적 방종을 부추기고 냉소주의를 퍼뜨린다. 오직 벌거벗은 힘이 전부라고 믿는 비도덕적 사회풍조를 키운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비이성과 결합할 때 민주주의의 방법과 수단이 타락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목적이 훼손된다. 후속세대가 민주주의를 하찮게 여기고 염증을 느끼게까지 할 수 있다. 다수가 민주주의정신을 외면하고 다수결을 도깨비방망이처럼 휘두르면 못할 일이 없는 세상이 된다.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의 도구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염치없는 다수결을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다수결로 일인장기집권과 독재를 승인해 준 일도 있다. 다수결로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해 준 일도 있다. 체제전복을 노리는 선동가들이 다수를 장악하면 민주주의의 절차를 통해 세습군주제를 만들 수도 있고, 파시스트국가를 만들 수도 있고, 무산자독재국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런 극단적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국운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잘못된 다수결이 질식시킨 민주주의를 다시 수복하려면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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