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덧없는 권력과 염량세태

운정서실 2020. 9. 5. 16:08

   자고로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은 권력의 무상함을 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노래했으며, 인생의 무상함을 보고 일장춘몽(一場春夢)을 노래했다. 인생의 궁극은 무상하고 덧없지만 우리네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인생의 덧없음에만 빠져 살 수는 없다. 고관대작(高官大爵)들도 다르지 않다. 인생의 덧없음만 생각하고 허무주의에 빠지면 인생이 피폐해진다. 나약한 인간들은 살아있는 동안 이끗과 옳고 그름을 따져 아웅다웅하며 살 수밖에 없다. 아귀다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권력과 인생의 무상함을 아주 잊어서는 안 된다. 때때로 권력의 무상함과 인생의 덧없음도 상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극단으로 치닫는 실책을 피할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영생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저지르게 되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억제할 수 있다.

   금년에 들어 이상한 역병이 창궐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지루한 장마 뒤에 연이은 태풍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오뉴월 더위 또한 버거웠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오고 있다. 아직 잔서(殘暑)가 쟁쟁하지만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달라지고 있다. 그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제법 서늘하기도 하다. 무궁(無窮)할 것 같던 더위도 한풀 꺾이는 모양이다. 무더위인들 제가 별 수 있겠나.

   밀려오는 가을의 기세를 느끼면서 몇 가지 단어가 두서 없이 떠오른다. 염량세태(炎凉世態)니, 감탄고토(甘呑苦吐)니, 새옹지마(塞翁之馬)니, 부메랑이니 하는 말들이 그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생각난다. 기요틴(길로틴: guillotine)이라는 단두대를 개발했던 사람이 뒤에 기요틴으로 처형되었다는 소문도 뜬금없이 생각난다. 이런 상념들은 요즈음 언론매체를 뒤덮고 있는 뉴스들 때문인 것 같다. 특히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명천지에 벌어지고 있는 천박한 소동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만약 검찰에 대한 보복심리 때문에 분탕질을 벌이고 있다면 그 죄를 장차 어찌하려는가.

   미세관리(micro-management)를 서슴지 않는 인사권으로 검찰을 핍박하여 정권의 허물을 덮으려 한다면 그 효험이 얼마나 갈 것으로 생각하는가. 지금의 하수인들이 정권이 바뀌어도 충성심을 유지할 것 같은가. 그들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종생토록 지키리라 믿는가. 자기의 치부와 비리를 폭로하려는 자들을 억압하여 입을 다물게 하려고 하수인을 고용하는 것은 악수(惡手)이다. 하수인이 할 행동은 성과가 확실치 않은 악행이며, 하수인이 설령 성공하더라도 그는 주인의 약점을 샅샅이 알고 오래 말썽을 부릴 수 있다. 하수인들은 대개 과도한 대가를 요구하며 방종하게 된다.

   고분고분한 직원들을 승진시키고, 정권에 뻣뻣하게 구는 자들을 좌천시켜 얻는 공직기강이 과연 올바른 것이며 오래가는 것인가. 지금 좌천된 자들이 새옹지마를 읊조리고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생각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 정권에 고분고분한 자들은 다음 정권에도 고분고분해서 소추의 칼끝을 옛 주인에게 겨눌 것이라는 이치를 영영 모른다는 말인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은 허망한 말이라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은 이제 원수로 삼고 길길이 뛰면서, 어찌 장래를 위한 인사에서는 그러한 가능성을 잊는가. 

   그대들이 검찰개혁의 획기적인 도구로 여겨 공을 들이고 반대를 무릅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설치는 내심 검찰 견제에 역점을 두는 모양이다. 정권을 내놓은 뒤에도 '내 사람'으로 채워진 공수처가 옛 주인의 허물에 대한 검찰의 추적을 막아주리라는 기대가 없지 않다고 수군 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뜻대로 된다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공수처가 수사기관들의 우두머리로 앉아 월권하기로 마음 먹는다면 바로잡기 어려울 수도 있다. 검찰이나 공수처는 초록동색(草綠同色)으로 한통속이 될 수도 있다. 만일 공수처를 현정권에 충성하도록 만든다면, 그런 공수처는 다음 정권에서 또 그 집권세력에 충성해 옛 주인을 추토(追討)하는 데 앞장설 수 있다. 공수처를 정권유지의 도구로 만들 요량이라 한다면 그것이 정적(政敵)의 수중에 넘어갔을 경우 어찌 될지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부메랑이라는 말을 어찌 잊으려 하는가. 정권의 무상함도 한 번쯤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공수처가 그 탄생을 위해 신명을 바친 사람들에게 장차 결초보은(結草報恩)의 마음을 끝내 버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의 주변에는 염량세태를 일깨우는 사람들이 그리도 없다는 말인가.

   지금 국민은 집권세력에게 매우 강력한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의석의 절대다수를 집권세력에 안겨준 것은 그 단적인 증좌이다. 국민의 이름을 내건다면 가히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검찰이 정녕 그대들에게 눈엣가시라 한다면, '촛불혁명'의 대업완수에 걸림돌이 된다고 믿는다면, 검찰조직을 사실상 없앨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예컨대 검찰에는 소수의 공판담당검사들만 남겨두고 나머지 검찰조직은 경찰에 흡수시키는 방안은 어떠한가. 촛불정신을 받드는 여당의 정치인으로 임명하는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직하게 하고 말이지. 그러려면 검찰의 독립이니 정치적 중립이니 하는 단어는 모든 정부문서에서 지워야 하겠지. 그렇게까지 나갈 의향이 없다면 조잔(凋殘)하고 볼품 사나운 방편으로 검찰을 지분거려 길들여보려는 시도는 멈추는 것이 좋다. 집권자에게 맹종하도록 검찰을 잘 길들일 수 있다고 한들 정권이 바뀌면 그런 검찰이 어떤 행동을 할지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근시안적 임시방편이 삶의 현장에서 불가피하고 다급하다 하더라도 넓고 멀게 앞을 보라는 경구를 아주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집권자들은 겉으로는 기존의 체제를 고쳐 쓰는 개혁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체제를 갈아 엎는 혁명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대들이 표방한 개혁 어젠다대로라면 법령으로써 검찰의 권한을 줄이고, 검찰의 비위에 대한 감찰제도를 강화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검찰에 대한 피동적 개혁의 한계는 거기서 멈추고 나머지는 검찰의 능동적 개혁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무한한 것처럼 뽐내는 인사권을 무시(無時)로 휘둘러 정당한 수사활동을 교란하거나,  특정인에 대한 견제를 노려 조직편제를 기형화하거나, 검찰지휘부를 능멸하는 등의 거조(擧措)는 심한 일탈이다. 그런 일탈은 개혁추진자의 신망을 땅에 떨어뜨리고 살벌한 반작용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 개혁대상자들에게 모욕감을 주어 개혁을 성사시키라는 처방은 문명사회의 교과서에서는 찾을 수 없다.

   정부는 품격을 잃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품격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사람들은 장관의 품격을 대통령에게 투사(投射)한다. 장관의 품격에 미루어 대통령의 품격을 짐작한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을 오래 듣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정권을 주무르는 사람들은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정권의 잘못이 있어 추적 당한다면 힘이 있는 동안에 들추어 햇볕에 내놓고 징치하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 감추려다 덧나고, 권좌에서 물러난 후에 혹독한 처단을 당하는 것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힘을 잃은 권력자들이 얼마나 참혹한 처단을 당했고 당하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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