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일찍이 "관대하되 문란하지 말고, 단호하되 잔인하지 말라" 일러두었건만, 그대들은 관대하지 못하면서 문란했고, 단호하지 못하면서 잔인했다. 반대자들에게는 관대하지 못하면서 내편에서는 문란했고, 반대자들에게는 잔인하면서 내편의 잘못에 대해서는 단호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그대들은 naeronambul 이라는 말이 세계화되는 데 기여하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판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결정한 처사(處事)는 서글픈 코미디였다. 그대들은 개혁(改革)의 의미를 왜곡하는 데도 기여했다. 검찰개혁이라는 말을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뜻으로 읽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어떤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2화] 사람들은 모든 독재를 싫어한다. 군사독재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촛불독재'도 예외가 아니다. 그대들은 촛불이 완전정의(完全正義: perfect justice)이며 국가통치를 독단할 수 있는 절대권력이라는 환상을 키웠다. 그리하여 범죄혐의자를 옹호하기 위해서 '신성한' 촛불을 드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환상은 결국 그대들의 주군(主君)을 나락(奈落)으로 이끌게 된다. 그대들이 만일 촛불로써 국가의 사법기능까지 조종하려 했다면 훗날 쏟아질 사법적 문책을 어찌 감당하려 하는가. 촛불은 나쁜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서 임무를 끝냈어야 한다. 촛불로 나라를 내내 통치하려 하거나, 날로 당파색(黨派色: partisan bias)이 짙어지는 촛불에 기대 정권연장을 획책하거나, 촛불 마케팅으로 부귀영화를 도모하려 한다면 그것은 무리(無理)다. 강고하고, 호전적이고, 불변하는 소수 지지층에 덜미를 잡히는 일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3화] 전지전능(全知全能: omniscience and omnipotence)은 귀신계(鬼神界)에서나 상상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이다. 인간세상에 전지전능이란 없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전지전능을 흉내내다가는 망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는 복잡하고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무한한 공포심을 가져야 초고속(超高速)의 변동을 겪고 있는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전지전능한 문제해결탐색을 단독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선의 이상적인 방법이겠지만 실현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불완전한 인간이 거대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차선책은 여러 사람이 협력하고 의견을 모으는 것이다. 막무가내(莫無可奈)로 감행하는 '밀어붙이기'(obstinate push)는 위험하다. 고도산업사회에서 혁명은 불가능하다. 점진적 개혁만이 가능하다. 혁명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자성해야 한다.
[4화] 병적인 충성경쟁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앞잡이들은 주군(主君)의 세(勢)가 기울 조짐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주군에게 등을 돌린다. 이건 동서고금(東西古今)에 불변하는 법칙이다. 권력변동에 대한 그들의 촉각은 비상하다. 고로 앞잡이들의 동태를 살피면 정치권력의 성쇠(盛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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