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다시 한번 엽관주의에 관하여

운정서실 2022. 7. 22. 18:09

   공무원들, 특히 인사행정에 관여하는 공무원들, 그리고 정부의 인사행정을 평가하는 언론 종사자들은 인사행정과 인사행정학의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야 한다. 적어도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 엽관주의에 대해 왈가왈부하려면 엽관주의라는 전문용어가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어야겠지.

   인사행정학에서 사용하는 엽관주의라는 개념, 엽관체제라는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려고 한다. 1950년대, 1960년대에나 필요했던 진부한 이야기를 21세기에도 다시 하려니 한심하지만 별수 없다. 

   영어의 Spoils System을 엽관체제라 번역하고 그 원리를 엽관주의라고 번역해왔기 때문에 보통 생활인들 사이에서는 오해가 있음 직하다. 엽관(獵官)이란 본디 나쁜 행위에 붙여진 이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엽관을 "금품·연줄 그 밖의 온갖 방법으로 관직을 얻으려고 다툼"이라고 정의한다. 엽관이란 관직 사냥이며 온갖 부정부패를 통해 관직을 얻는 행위이다. 관직을 훔치는 것과 다름없다. 엽관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니 매관매직(賣官賣職)이니 하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말뜻이 원래 그러하니 비전문가들이 엽관임용은 불법·부당하다고  생각할 만도 하다. 엽관 임용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는 대중을 설득하기 번거로우면 Spoils System이라는 영어 명칭을 그대로 쓸 수도 있을 것이며 엽관적 임용을 정치적 임용, 재량적 임용, 비경쟁적 임용 등으로 부르곘다고 양해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사행정학에서 인사행정체제의 특성을 논의할 때 쓰는 엽관주의라는 개념은 언제나 나쁜 것이라고 하면 안 된다. 엽관주의는 우선 중립적인 개념이다. 그에 대한 가치판단은 나중의 문제이다. 엽관주의는 인사행정의 다양한 접근방법을 이끄는 원리들 중의 하나이다. 엽관주의적 인사행정은 일반적인 장점과 단점, 효용과 한계를 지닌 것이다. 그것이 적용되는 상황적 조건에 따라 장점이 더 부각되기도 하고 단점이 더 부각되기도 한다. 단점이 더 부각되면 비판을 받고 개혁의 대상이 된다.

   인사행정의 엽관체제는 집권정당에 대한 기여와 충성심을 기준으로 공직임용을 결정해야 한다는 엽관주의에 입각한 제도이다. 이제도의 일반적 장점은 i) 정부관료제의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것, ii) 공무원들에 대한 집권 정치인들의 통제력 또는 통솔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 iii) 정당발전 등 민주정치의 발전을 돕는다는 것 등이다. 이 제도의 약점은 i) 정당에 연줄 있는 사람들이 공직을 차지하기 때문에 인사행정의 고평성을 해친다는 것, ii) 공직의 계속성과 전문성을 손상한다는 것, iii) 정부업무의 능률을 떨어뜨린다는 것, iv) 공직의 기강해이와 부패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엽관체제가 쉽게 수용되고 이점이 더 부각될 수 있는 상황적 조건으로는 i) 정당제도를 포함한 민주적 정부제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제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현안인 것, ii) 행정업무가 단순하고 업무담당자의 전문화 수준이 낮은 것, iii) 공직 취임을 위한 경쟁이 덜 치열한 것, iv) 사회적 특권계층의 공직 독점에 대한 비난과 저항이 고조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엽관 체제의 결함을 부각하는 조건으로는 i) 엽관의 도움 없이도 유지될 수 있을 만큼 정당들의 자생력이 성숙한 것, ii) 특권계층의 공직 독점 관행이 사라지는 것, iii) 공직임용을 둘러싼 부패가 심각해지는 것, iv) 행정의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엽관주의의 폐해가 커져서 이를 몰아내려 할때 엽관체제의 대안으로 처방되는 대표적인 인사행정제도모형은 실적주의에 입각한 실적체제(Merit System)이다. 실적주의는 실적기준(자격에 관한 객관적 기준)에 따라 인사행정을 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실적체제의 중심적 실천수단은 i) 공개경쟁채용시험의 실시, ii)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신분의 보장, iii) 정당적 영향으로부터 중립적인 중앙인사기관의 설치이다. 엽관체제는 이러한 실천수단 한정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실천세계에서 실적체제가 엽관 체제를 대체하는 과정이라든지 그 밖의 인사행정 원리들이 인사행정을 차례로 수정해 가는 모습을 미국의 인사행정사에서 아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인사행정 원리의 변천사를 설명할 때는 미국의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처음에는 귀족적이라고 비판받던 정부관료제의 관행을 타파하고 엽관주의를 공식적인 인사행정원리로 채택했었다. 정부 내외의 여건이 바뀌고 엽관체제의 폐단이 커지자 엽관체제를 몰아내고 실적체제를 들어앉혔다. 그 후 대표관료제의 원리 등 다른 여러 인사원리로 실적체제의 결함을 보완해 왔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대개의 현대 민주국가들은 실적주의를 인사행정의 기본원리로 삼는다. 예외적·보완적으로 다른 인사행정원리들도 혼합하고 있다. 실적주의를 기본으로 삼는다지만 실적주의만을 절대적으로 고집하면 인사행정이 지나치게 경직화되고 여러 가지 차별문제를 낳을 수 있다. 정부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현대국가에서 실적주의적 인사행정을 보완해주는 인사원리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엽관주의와 대표관료제의 원리이다, 대표관료제는 모든 사회집단들이 한 나라의 인구 전체 안에서 차지하는 수적 비율에 맞게 정부관료제의 직위들을 차지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복지체제의 원리도 활용된다. 복지체제는 정부라는 임용구조가 실업자들이 최후로 의지할 수 있는 고용주여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것이다.  공무원 임용에서 보는 각종 우대제도, 할당제도 등은 대표관료제적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실업자 구제를 목적으로 공무원 정원을 늘리는 것은 복지체제적 정책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현대 민주국가의 인사행정제도는 모두 혼합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적주의를 주축으로 하지만 다른 여러 원리들도 보완적으로 함께  적용하기 때문이다. 실적주의 이외의 원리들도 그것이 공식적으로, 법적으로 승인된 것이라면 정당한 것이다. 실적주의적 임용 이외의 임용은 모두 불법인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인사행정도 혼합형이며 제한된 영역에서 분명히 엽관적 임용도 허용한다. 장애인고용할당제는 분명 대표관료제적 조치의 예이다.

   엽관주의적 임용은 집권정당의 성공을 위해 기여한 사람, 집권자가 신뢰하는 사람 등을 실적체제의 절차적 요건을 거치지 않고 임용하는 것이다. 임명권자의 판단에 큰 가중치를 주는 임용이다. 장·차관의 임용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볼 수 있다. 엽관적 임용이 정치적·정파적 임용이라고 설명되기 때문에 정당원만, 정당의 공식적 선발절차에 따라 합격한 사람만을 공직에 임용해야 엽관적 임용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생각은 오해에서 나온 것이다. 임명권자와 임용대상자 사이의 연고관계는 넓게 해석된다. 그러니 엽관적 임용에서 정실주의적 고려를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오늘날 엽관적 임용의 핵심적 특성은 후보자의 적격성에 대한 임명권자의 판단을 중시한다는 것, 그리고 공개경쟁시험 등 실적주의적 임용절차의 요건을 건너뛸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쓴 책<인사행정론>에서 우리나라 인사행정에서 용인하는 엽관주의를 설명한 대목을 다음에 옮기려고 한다.

 

   "현대문명국가에서 인사행정의 엽관체제를 총체적으로 채택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엽관주의를 완전히 배척할 수도 없다. 집권자들이 믿을 수 있고 충성심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을 써야 할 때, 임용예정직의 자격기준을 객관화하여 시험하기 어려울 때, 그리고 인사운용상의 실적주의적 제약을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여러 폐단과 남용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범위 내에서 엽관주의 적용을 인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정한 직역(職域)을 한정하여 실적주의적 임용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엽관적 임용의 가능성을 법적으로 승인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영역이 장·차관 등 정무직의 임용이다. 별정직의 일부,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자 등에 대한 엽관적 임용도 허용된다. 국영기업 등 준정부조직의 고급관리자 임용에도 엽관적 방법 사용의 길을 열어놓았다.

   앞으로 정치와 행정의 경계조정이 진행되어 이른바 '정치화'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인사행정의 융통성 체제화에 대한 요청이 커지면 엽관체제의 적용범위도 넓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엽관적 임용의 수요가 증대하면 그에 대응한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엽관체제 적용의 확대에 따르는 실천적 과오의 위험이 크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여러 가지 폐단을 경험하였다. 특정한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위인설관의 사례, 무능하거나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람을 개인적 친분이나 정치적 이익거래 때문에 임용한 사례, 엽관인사의 지역적 불균형을 누적시킨 사례, 엽관인사가 금지된 영역에까지 엽관인사의 영향을 파급시킨 사례 등이 엽관체제 운영 상의 실책으로 지적되어 왔다.

   엽관임용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은 임용권자의 현명한 판단을 전제한다. 임용권자는 자유재량의 범위 내에서 자율규제의 준칙을 지켜야 한다. 임용권자들은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를 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엽관인사라 하여 아무 범절도 없이 마구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