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미국 유학생들이 미국 정부에는 연방인사위원회(CSC: Civil Service Commission)가 있다는 것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 정부에서도 중앙인사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에는 위원회형의 중앙인사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학계의 미신으로 굳어 있었다.
그런 미신은 차츰 정 · 관계와 언론계로 퍼져나갔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앙인사위원회의 설치는 대통령선거공약에 들어가게 되었다. 인사위원회를 만들어 공평인사 · 탕평인사를 펼치겠다는 약속은 대중을 설득하는 데 유효한 선거전략이 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공약을 내밀었던 첫 번째 대통령은 당선 후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두 번째로 같은 공약을 했던 대통령은 마지못해 중앙인사위원회라는 것을 빈약하고 어정쩡하게 만들었다. 그 뒤 집권정당이 바뀌면서 10년도 다 못 채우고 중앙인위원회는 정부조직도표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에서도 연방인사위원회는 1970년대에 폐지되었다.
'검수완박'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검찰개혁이 추진되면서 검찰의 수사기능을 없애는 대신 검찰의 수사기능을 넘겨받을 기관들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도 여러 가지로 거론되고 있다. 그중에서 인기 있는 대안이 미국의 연방수사국(FBI: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과 같은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 기구의 모형이 우선 선진 우방국에서 만들어진 미제(美製)라는 사실이 좋은 호응을 끌어내고 있는 듯하다. FBI의 탁월한 수사능력에 매료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는 서로 다른 국가 체제하에 있다. 미국은 연방국가이다. 주 경찰, 지방경찰 등이 분립되어 있는 제도하에서는 주와 지방의 관할들을 가로지르는 수사활동을 할 수 있는 연방수사국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연방국가가 아니다. 전국을 관할하는 국립경찰(국가경찰)이 있다. 그런 경찰을 놓아두고 다시 중대범죄수사청이라는 가명이 붙은 국가수사기관을 만든다면 무슨 효용이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설된 한국형 FBI가 미국의 FBI처럼 발전된 수사역량을 갖게 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미국의 FBI 변천사도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초대 국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라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국장 자리를 내놓지 않고 막강한 권력자로 군림하면서 무리한 일들도 저질렀다고 한다. FBI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후버는 여덟 명의 대통령이 바뀌도록 대통령을 포함한 유력정치인들의 약점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해임할 수 없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가 죽음으로서 겨우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건 추정이지만 정치권과 FBI 사이의 음흉한 묵계(默契)가 서로 불가침의 관계를 설정하고 win-win의 과실을 향유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FBI는 유력정치인들의 범법행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도 형사문제화하지 않고 덮어 주는 대신 FBI 왕국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범법정치인들의 다짐을 받아두었을 수 있다. 그런 공작이 FBI 왕국의 존속과 세력확장을 오랫동안 보장해주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은 것 같다. 이런 가상적 사례가 시사하는 바를 우리 정계와 수사기관들이 어떻게 소화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국가의 수사기관들이 입법권을 가진 국회를 건드릴 수 있느냐에 관한 국민적 논쟁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새로 생길 수사기관도 정치적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사기능박탈이라는 비운을 되풀이하게 되는지의 여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옥상옥으로 수사기관들을 남설하는 것도 문제이다. 경찰이 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는 위에 다시 미국이 자랑하는 FBI와 같은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든다면 수사권력의 분산으로 수사기관의 무슨 절대권력이니 독재니 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은 내세울 수 있겠지만 이익보다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가의 수사기구를 분열적 조직(fragmented organization)의 체제로 만든다면 퇴보이지 진보라 할 수는 없다. 현시대의 개혁 사조는 조직의 기능적 분할이 아니라 일의 흐름을 존중하는 구조설계를 지향한다. One-stop service를 처방한다. 기관주의와 관할분쟁이 아니라 통합조정, 협력, 파트너십을 강조한다.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사람들도 법무부 산하로 들어갈 중대범죄수사청의 설치는 망설이는 것 같다. 경찰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찰로서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검찰에 비난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전체의 이목이 '검수완박'에 집중되는 바람에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널리 입에 오르내리지만 '경찰국가'라는 말은 잊혀진 것 같다. 경찰팽창에 대한 저항이 지금 최소화되어 있다. 이참에 경찰은 기구와 인력, 수사기능 등을 획기적으로 확대 ·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검찰의 그늘에서 벗어나 국가의 수사중추기관으로 우뚝 서는 것이 경찰의 오랜 숙원 아닌가. 경찰은 기회가 왔을 때, 혼란을 틈타 신속하게 움직인다면 오래 꿈꿔온 소원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집권한 사람들은 막강한 경찰력을 장악해 그 충성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검찰을 약화시키는 데 오로지 일구월심 심혈을 기울여 필요한 입법까지 마무리하고 정권을 넘겨준 사람들의 소회는 어떤 것일까. 온갖 무리를 감행해 가면서 이른바 공룡경찰을 만들고 그것을 정적의 손에 넘겨준 정당은 이제 와서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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