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공부문에는 임기제 직위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대통령과 진퇴를 같이 해야 마땅할 것으로 보이는 직위까지도 임기제로 묶어놓아서 정권교체기마다 볼품 사나운 아귀다툼을 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설(濫設)된 임기제를 정비할 때가 되었다. 임기제는 대중영합적 제도라 쉽사리 손보기가 어렵겠지만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이 문제를 위정자들이 거론하기 어렵다면 학술단체들이 앞장서서 정책의제화를 촉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좋다고 하면, 인기 있다고 하면 과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공공부문의 개혁에서 인기를 얻어온 말들이 많다. 정치적 중립이니, 조직운영의 자율성이니, 분권화니, 정책수행의 일관성이니 하는 말들이 그중에 포함된다. 정치적 중립과 정책수행의 일관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조명을 받게 된 것이 공직임용의 임기제이다. 임기제는 공직자가 신분 불안의 위협에서 벗어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정책 추진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라고 소개될 때 대중은 그게 좋다고 믿는다. 그러니 내가 임기제는 대중영합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임기제 도입의 선언은 공직선거의 득표전략으로도 유용하다. 위정자들은 임기제를 이용해서 자기가 임용한 공직자의 자리를 보전해 줄 수 있으니 보은인사(정실인사 · 엽관인사)의 수단으로 안성맞춤이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임기제의 장점은 과대포장되고 그 단점이나 폐단의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장점 주장자들이 득세할 때에는 단점이나 폐단을 지적하려는 사람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임기제의 실천적 내막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임기제는 여러 얼굴을 지녔으며,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과 오용의 위험을 여럿 안고 있는 제도이다. 임기제는 신분을 보장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근속의 한도를 설정하는 신분보장 제한의 기능도 수행한다.
임기제는 그 적용을 받는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기도 하고 제한하기도 한다. 중요직책을 맡아 임기의 보장을 받는다면 개인에게 이익이 될 것이며 그의 지위는 격상될 것이다. 그러나 근무기간, 업무완성기간을 정한 계약에 따라 임용된 사람은 비정규직으로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임시직원 취급을 받기 쉽다.
임기제는 사람을 쓰는 조직에 대해서도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지닌 제도이다. 임기제 직원이 임기 동안 신분불안을 느끼지 않고 일관된 정책수행에 전념할 수 있다면 조직에 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임용권자는 임용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다. 인사운용이 경직해진다. 융통성과 필요한 적응이 어려워진다. 정책 실행은 일관성과 적응성을 균형 지어야 한다. 임기제 적용으로 정책의 일관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정책체제의 적응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임기 보장을 방패 삼아 나태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제재하기 어렵다. 특히 정권교체로 새로이 집권한 사람들은 뜻이 맞지 않는 임기제공무원들을 공식적으로는 내보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보내려는 사실상의 시도는 음으로 양으로 빚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사임 강요니, 블랙리스트니 하는 불법 · 부당한 처사들이 정권교체기마다 노출되어 정치 · 행정을 혼탁하게 하고 국민의 불신을 키운다. 이면의 압력으로 임기제 공직자를 그 임기 전에 내쫓는 일이 빈발한다면 제도를 형해화한다. 그로 인한 해독은 임기 규정이 없을 때보다 월등히 더 크다.
이참에 공공부문의 인사행정에서 적용하고 있는 임기제를 전면적으로 다시 평가하여 개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지하거나 더 강화할 것, 폐지할 것, 그리고 수정할 것을 구분하여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수정한다는 말은 변형 임기제 또는 절충형 임기제를 만든다는 뜻이다. 예컨대 금융위원회 위원장이나 한은총제의 임기는 잘 지켜주되 대통령과 집권당이 바뀌면 임명권자의 재신임을 받게 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정치적 중립성이나 자율성, 정책수행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서 어떤 조직의 책임자를 임기제로 반드시 임용해야 한다면 여러 정파의 만족스러운 합의를 거쳐 중립적인 인물을 임용해야 할 것이다. 어느 특정 정파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람을 임용해 놓고 정권이 바뀌어도 그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여력이 된다면 공직자의 정치활동금지제도, 공직자의 신분보장제도, 공직자의 정년제도 등 연관제도들에 대한 재평가작업도 해서 시대의 요청에 맞게 수정 · 보완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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