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대학의 영욕

운정서실 2021. 5. 16. 13:28

   대학의 영욕

 

나랏돈 나눠주기('퍼주기') 공약을 잘하고 그 효험을 톡톡히 보아온 정치인의 정책구상 하나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책구상이란 대학 안 간 젊은이들에게 세계여행경비 천만 원씩을 나눠주자는 아이디어이다. 대학을 안 갔다기보다 못 간 사람들에게도 국가지원금을 주어 공적 지원의 형평성을 도모하자고 한 말이라지만 달리 해석될 수도 있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도록 권장하자는 것이냐, 또 다른 퍼주기의 포퓰리즘 아니냐 하는 등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별 볼 일 없는 대학 가느니 외국여행이나 하는 게 낫다는 말 같기도 하다. 대중영합정치에 능한 정치인은 대학을 깎아내리는 발언이 대중에게 '사이다'로 다가갈 것을 재빨리 감지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학교육이라는 학벌도 특권이요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대학을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땅에서 대학은 높은 신망의 대상으로 생애를 시작하였다. 그에 대한 찬가(讚歌)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다가 신비의 베일은 차츰 벗겨졌고, 마침내 대학의 위기를 노래하는 엘레지가 울려 퍼지고 있다. 대학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어쩌다가 업신여김거리로 전락했을까. 대학은 사양산업인가.

   옛날 국민 대다수가 문맹이던 시절 학교교육의 문을 연 신식 학제가 도입되었을 때, 대중은 낯설지만 일종의 외경심을 가지고 신제도를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학제도가 도입된 초창기에는 그것이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신비하기까지 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대학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엘리트로서의 대학생은 선망과 존중의 대상이었다. 사각모자를 쓴 대학생들이 얼마나 으스댔는지, 그들의 방종까지도 사람들이 얼마나 너그럽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넘쳤다.  대학은 실용적 인재양성기관이라기보다 진리탐구에 매진하는 상아탑의 이미지를 가지려 애썼다. 그에 대한 대학구성원들의 프라이드는 대단했다. 그런 태도는 대중과 멀리 떨어진 엘리트집단의 신비감을 유지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대학 졸업생들은 희소했으며 그저 많이 배운 사람들이라는 막연한 인식의 프리미엄을 업고 상류사회에 진입하는 넓은 길을 걸었다. 대학 졸업생이 있다는 사실은 가문의 자랑거리였다.

   전통적으로, 옛날에는, 공부를 많이 해 선비가 되고 벼슬길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만백성의 선망이었다. 거기에 뿌리를 둔 우리네 교육열은 높다. 신비로웠던 고등교육의 기회가 국민들에게 널리 열리면서 향학열은 폭증했다.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것은 부모 된 자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으며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자식을 대학공부까지 시켰다는 것은 가없는 보람이며 자랑거리였다. 때맞춰 경제성장이 촉진되면서 대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양산되었다. 망하지 않는 장사는 먹는장사와 학교장사라는 말이 유행했다. 대학교육을 통해 형성한 학벌은 사회진출과 직업적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대학교육의 폭증이 국가에 가져온 이익이 클 것이다. 우리의 급속한 경제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요소는 높은 교육열과 고급인력의 확장된 공급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괄목상대해야 할 변화도 많다. 그러나 지금 대학의 찬란한 공헌보다 부끄러운 흠절이 더 많이 거론되고 있다. 대학이라는 장독의 장맛에 대한 논의는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장독에 기생하는 구더기 이야기만 요란하다.

   대학의 신망이 떨어지는 과정은 상당히 오래 진행되었다. 대학과 대학졸업생이 양산되면서 그 신망과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그 공로나 이득보다 비용과 과오가 사람들의 눈에 더 많이 뜨이기 시작했다. 외경과 보호의 가림막 뒤에 숨겨졌던 치부가 햇볕에 노출되면서 대학, 대학구성원들의 일탈과 방종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비난받는 일이 늘어났다. 제한된 일탈사례들은 대중의 머릿속에서 일반화의 착오를 일으켜 왔다. 대학은 교육내용이 부실하다, 실용성이 떨어진다, 수요-공급 균형화에 실패했다, 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 게으르거나 실패했다, 비용이 많이 든다, 도시인구집중을 부추긴다, 과잉학력의 문제를 만든다, 입시과열경쟁을 초래하고 사교육의 병적 팽창을 조장한다, 학벌의 대물림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한다 등등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입시부정사례들과 논문부정사례들이 폭로되면서 대학의 면목은 먹칠이 되었다.

   대학이 반독재투쟁에 앞장서는 학생운동의 본산이라는 이미지도 강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학생운동가들이 정치에 대거 진출해 권세를 잡고, 벼슬을 하고, 점차 기득권층으로 변해가면서 그것이 대학의 이미지에 반드시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게 되었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기보다 직업적 운동권의 본거지이며 정치인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 위태롭게 편향적인 투쟁가들도 배출하는 양성소라는 이미지가 가져오는 실(失)은 득(得) 보다 많을 것이다.

   교수 또는 그와 유사한 직함을 가진 사람들의 절제 없는 현실참여와 매스컴 노출도 대학의 이미지를 갉아먹었다. 이른바 '폴리페서'라는 딱지가 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며 대학 공동체에 끼친 해독이 얼마나 컸는가. 정·관계에 줄을 대고, 대중과 정치세력에 영합하느라 영일(寧日)이 없었을 사람들이 최고의 지식인 행세를 하는 것도 보기 민망하다. 폴리페서는 대학의 정치적 오염을 조장하는 통로가 된다. 당파적 활동의 선봉에 서고 이념투쟁의 투사로 활동하면서 교수의 직함은 끝내 버리지 않는 '폴리페서'들을 숭배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은 '폴리페서'가 대학에 끼치는 손상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학과는 직결되지 않는 일이지만, 교육감 선거 때마다 진보진영 후보라느니 보수진영 후보라느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정치적 사상의 편향이 심한 사람들이 교육감으로 되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가엾다. 사상적 편향의 득세라는 교육계의 풍조가 대학까지 덥칠까 걱정이다.

   취업난은 지금 국가적인 문제이다. 대학졸업생의 취업난이 유독 더 크게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대학졸업생들의 취업난은 대학을 시시하게 보는 생각을 부추긴다. 취업을 못하거나 대학졸업장과는 상관없는 직업분야에 종사하는 대학졸업생들이 늘어나면서 대학교육의 효용에 대한 의심은 커지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진학하는 인구가 줄어들었다. 지원자들의 정원 미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들이 늘어나는 것도 대학의 위기를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래저래 대학이 처한 여건은 비우호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대학구성원들은 대학의 실책과 일탈이 만천하에 낱낱이 공개되는 세상이 도래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대학구성원들은 결의를 새롭게 다져 대학의 약점이 정치적 쟁투의 목적에 이용당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대학을 공격하는 것이 정치판의 인기전술이 되고 득표전략의 메뉴가 되지 않도록 자세를 다잡아야 한다. 대학과 정치의 유착은 막아야 한다. 대학은 정치를 연구하는 조직이지 정치현장에서 정치를 하는 조직이 아니다. 대학의 정치적 중립성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무슨 이데올로기에 중독된 사람들이 대학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는 무파(無派)라야 한다.

   국민을 위한 평등주의정책, 형평성추구정책을 추진한다는 정치는 산학협력(産學協力)의 틀을 지원하는 것이라야 한다. 일시적인 인기를 위해 산학대립을 부추기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우수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교육투자를 계속하거나 늘릴 것인지 아니면 그에 들어가는 돈을 빼내 젊은이들에게 고루 나눠줄 것인지에 대한 사상을 밝혀야 할 것이다. 고루 나눠주는 방안이 득표전략에 유리할 터인 즉 걱정이다.

   대학은 필요한 사람만 가야 한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자리 잡아야 하지만 이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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