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는 거간꾼(broker)이라고 불러야 할 특이한 직업군이 있다. 그중에서도 쇠락한 정당의 회생을 전문으로 하는 거간꾼들이 성업 중에 있다. 그들은 상호 적대적인 진영들을 오락가락하면서 떠돌아다닌다. 성공적이라고 자부하면서 우쭐대는 거간꾼은 악명인지 명성인지 모르겠으나 높은 지명도를 누린다. 그들의 이름은 대통령을 포함한 어떤 정치인들의 이름보다 대중매체의 뉴스에 더 많이 오르내린다. 그들은 거래 상대의 정치노선을 가리지 않고, 거래에서 자기 밑천을 들이지 않으며, 정당(거래처)과 유권자 사이의 흥정에 개입하기 때문에 정치판의 거간꾼이라 부르는 것이다.
정치판의 거간꾼들에 대한 정치학도들의 연구를 촉구하면서 '성공적인' 거간꾼의 특성에 관한 가설(假說: hypothesis)을 적어보려 한다.
첫째. 정치세력들의 성쇠를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뛰어난 촉각을 이용해 항상 승자 또는 승리가 예상되는 개인이나 집단의 편에 선다.
둘째, 당장 실세(失勢)의 어려움을 겪고 운영난에 빠져 있지만 곧 득세하게 될 거래처를 예리한 감각으로 알아내고 그 주변을 맴돌아 마침내 손을 잡는다.
셋째, 거래처가 회생하고 부흥하면 그 공로를 독차지한다.
넷째, 거래처와 헤어질 때는 언짢게 헤어진다. 헤어지면서 또는 해어지자마자 돕던 거래처를 비판하고 비난한다. 심한 저주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기왕의 거래처와 경쟁적이거나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다른 거래처들이 접근해 오도록 길을 연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을 연달아 확보하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다섯째, 유망한 거래처로 새로이 부각되는 개인 또는 정파를 재빨리 간파하고 교묘한 신호를 보내 그쪽에서 먼저 접근해 오도록 유도한다. 그쪽에서 도움을 간청하면 싫지만 마지못해 응하는 것처럼 거래를 튼다. '교묘한 신호'란 예컨대 "관심 없다", "도울 생각이 없다", "도와달라면 생각해 보겠다",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 "그 쪽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오고 있다" 등등의 말을 뒤섞어 하면서 계속 그쪽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다.
여섯째, 자기를 무시하는 거래처, 은근한 거래제안을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거래처, 쉽사리 품 안에 들어오지 않는 거래처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온갖 악담을 퍼붓는다.
일곱째, 거래처들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을 일으키도록 부추기고 조작한다.
일곱째, 역량 있다는 세평을 듣는 거간꾼은 '대통령깜 감별사'라고 자처한다. 자기가 낙점하지 않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믿는 환상을 키운다. 대통령 깜 감별능력을 호언장담함으로써 잠재적 고객을 유혹한다.
거간꾼의 농간에 휘둘려 울고 웃는 정당꾼들의 꼬락서니는 실로 가관이다. 욕심이 앞서면 거간꾼들의 얕은 수에도 넘어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술수로 무장한 떠돌이 거간꾼들에 의존해 명맥을 유지해가는 가련한 정당제도의 장래에 대한 정치학도들의 설명을 듣고 싶다. 몇몇 정치적 거간꾼들이 정치지형을 쥐락펴락하는 '거간꾼 전성시대'는 후진적 정치상황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간꾼 전성시대라는 정치사의 한 토막에 대한 정치학도들의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학도들은 거간꾼 전성시대를 끝내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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