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와라 가라 행정"의 청산

운정서실 2021. 5. 18. 13:00

   종합소득세 신고의 과정을 겪으면서 '와라 가라 행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보았다. 내가 말하는 와라 가라 행정은 국민(행정객체; 민원인)이 행정기관에 불려 가거나 행정기관을 찾아가야만 하게 만드는 행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와라 가라'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무리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불려 다니기라는 뉘앙스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오라 가라 행정이 행정의 도처에 널려 있겠지만 종합소득세신고행정읗 한 사례로 들어본다.

   2021년 5월 17일, 매년 5월이면 해야하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전화신고로 끝냈다. 국세청에서 우편으로 보내준 세금계산서(과세표준 확정신고 및 납부 계산서)에 대한 수정사항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환급금을 수령할 은행계좌번호를 알리는 것이 신고 작업의 전부였다. 집에서 그야말로 간단히 일을 처리했다. 세무서까지 찾아가 인파 속에서 대기하다가 신고를 마치고 귀가하려면 거의 하루 해가 다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게 일을 쉽게 끝냈으니 이게 웬 횡재냐 싶었다. 민원행정연구에 관심을 가져온 나로서는 감회가 남다르다.

   다른 해에는 내가 직접 세무서에 가서 대기하다가 종합소득세 신고를 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는 상황이 최악이었다. 첫날에는 신고하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여서 허탕을 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가서 번호표를 받고 세무서 주변을 서성이다가 오후에야 신고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종합소득세신고를 하러 세무서에 가서 담당 직원 앞에 앉으면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한다. 주민등록증을 받아 쥔 직원은 무엇인가 계산을 해보는 듯하더니 하는 말이 "신고 끝났습니다. 환급금이 얼마이니 입금할 계좌를 말해주십시오. 계좌번호를 모르시면 우편 송금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게 전부다. 이걸 위해 날 세무서까지 부르다니 기가 막힌다. 내 말이 "왜 나를 부른 거요? 왜 쓸 데 없이 날 와라 가라 하느냐고? 이건 조선총독부 관리들이나 하던 행티 아닌가?" 국세청이 유리알 처럼 들여다보이는 내 납세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고 내가 과세처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아닌데, 날 굳이 세무서까지 불러 앉히는 건 무슨 억하심정이냐고?

   내 기억으로는 적어도 십여 년 이상 국세청은 그런 와라 가라 행정을 고치지 않고 버텨왔다. 2021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코로나 19 때문에 사람 많이 모이는 것이 금지되고 따라서 비대면신고가 강제되다시피 하니까 별 수 없이 와라 가라 행정을 고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여하간 업무처리의 가상공간화 촉진이 대세인 시대에 세무신고에 관한 와라 가라 행정이 다시 부활하지는 않겠지 싶어 저으기 안심이 된다.

   사람들이 사무소에 찾아와 북새통을 이루면  공무원들이 방역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마지못해 와라 가라 행정을 시정한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민원행정개혁 전략에 관한 한 깨달음을 얻는다. 민원행정에서 민원인을 괴롭히면 담당공무원들은 그 두 배 이상의 괴로움을 당하게 만들어야 민원행정개혁이 촉진될 수 있겠구나 하는 아이디어를 깨달은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민원행정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옛날 몽매(蒙昧)한 시절의 민관관계(그 시절에는 군관민관계)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회상된다. 왜정 치하에서 그리고 광복 조국에서 상당기간 우리 민초들은 "와라 가라 주재소, 내일모레 면사무소"라는 말에 친숙했다. 주재소란 순사(巡査: 순경)들이 근무하는 파출소를 말한다. 순사들이 부르면 복종해야 하고 그 이유나 당·부당을 따질 수 없었다. 면사무소는 민초들에게 관청의 대표기관이었다. 내일모레라는 표현은 민원처리의 터무니없는 지연 또는 회피를 비유하는 것이다. 일처리를 위해 면사무소에 가면 바로 처리해주지 않고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오라는 말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그리 되면 민원처리는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 되는 것이다. 원래 오늘내일이나 내일모레는 무슨 일이 가까워졌다는 말이지만 면사무소가 내일모레 한다는 것는 차일피일(此日彼日) 한다는 뜻으로 풀이해야 한다. 이날 저날 하고 약속이나 기일 등을 자꾸 미룬다는 말이다. 

   여기에 '사바사바' (은밀하게 뇌물을 주거나 아름 아름으로 청탁을 하는 행위)의 필요 또는 풍습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주재소에 불려 가서 경을 치는 것을 면하거나 가볍게 당하려고, 그리고 관청에서 쳐놓은 '와라 가라·내일모레'의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사바사바'를 동원했을 것이다. 민초들이 계란 한 줄, 닭 한 마리, 담배 한 곽을 들고 사바사바 하던 시절은 목가적이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사바사바는 왜말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나 어원은 확실치 않다. 왜말로 사바사바가 시원시원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사바가 고등어이니 사바사바는 고등어 두 마리라고 하는 풀이가 더 유력하다.

   내가 직접 겪은 일들도 생각난다. 1960년대 미국 유학길에 오르던 때 이야기이다. 국립대학교 교원으로 미국 정부장학금을 받아 유학 가겠다는데 출국해 귀국할 때까지 정부는 내가 여러 가지 곤욕스러운 일을 겪게 했다. 반드시 귀국해 5년 이상 근무하겠다는 서약서를 쓰게 하고 여러 서류를 제출하게 했으며 결재과정은 길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내가 관청 문턱을 부지런히 넘나든 것은 물론이다. 학업이 끝난 뒤 내 귀국을 담보하기 위해 보증인 두 사람을 세우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력가를 구해 손실보상의 책임을 지는 보증인으로 세우는 일은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장학금을 받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으나 출국에 필요한 행정절차는 나를 지치게 했다. 여권 유효기간은 2년이었다. 유학생활 중에 영사관을 통해 여권 기한연장을 하는 것도 여간 힘겨운 게 아니었다. 외국이 돈을 대서 날 공부시키는데 내 나라는 나를 이리도 괴롭히는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귀국 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려 하니 호적등본을 가져오라 했다. 시골 사는 친지에게 우편으로 부탁해 받은 호적등본을 동사무소에 가지고 갔더니 봉투에 담아오지 않았다고 타박이었다. 창구직원이 "관청을 뭘로 보고 그러느냐"라고 일갈했다.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이 되었다. 민원행정은 거의 단절적이라 할만큼 변하고 좋아졌다. 특히 정보통신의 발전과 가상공간 활용의 발전은 민원행정의 지형을 몰라보게 바꿔 놓았다. 많이도 편리해졌다. 신속하고 친절한 서비스에 놀랄 때도 많다. 그러나 좋아졌다는 말은 비교적이고 상대적인 표현이다.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는 말이지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와라 가라 행정의 잔재가 군데군데 남아 민원인들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다. 방문민원개선사업의 빈틈이 적지 않다. 국민편의위주의 행정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와라 가라 행정의 폐단을 청소하는 진정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관청 사무실에 많은 사람을 불러 모아 대기하게 하는 일은 정말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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