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

성과주의의 비애

운정서실 2024. 5. 22. 13:11

   전국규모의 공직선거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면 정치권에서는 선거결과에 대한 공과를 따지고 책임을 따지는 움직임이 떠들썩 해진다. 특히 패한 진영에서는 선거결과를 놓고 책임을 따지느라 심한 진통을 겪는다. "패인을 따져 백서를 만들자, " "책임을 규명하자, "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 "환골탈태해야 한다, " "패배책임자들은 물러나라" 등등의 소리가 높아진다. 그러면서 다툼이 벌어지고, 내부적 정쟁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흐지부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거패배의 상처만 더 깊게 하고 지나가게 된다.

   선거결과의 평가는 일종의 성과평가이다. 성과평가는 성과주의 구현의 핵심도구이다. 성과주의에 대한 선망과 갈망은 우리 시대의 대세이다. 성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끼는 공평성의 구현을 지향하는 원리이다. 성과주의는 현대인들이 원하는 공평성의 구현을 실질화할 수 있는 원리여서 현대인들이 좋아 한다. 거의 인생의 원리처럼 각광을 받고 있다. 일을 담당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보상과 제재를 결정해도 계급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당연시하거나 큰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더 받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 덜 받는 이치가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이 맡은 의무와 책임을 기준으로(직무기준으로) 보상과 제재를 결정하는 원리가 지배적이던 시대도 우리는 겪었다. 직무기준 역시 일을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 잘못했는지는 따지지 않기 때문에 불공평하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 비판의 과정에서 찾은 것이 성과주의이며 성과기준의 처우이다.

   인간생활에서 성과주의는 오늘날의 대세이다. 기업조직에서나 정부조직에서나 성과주의적 관리는 거부할 수 없는 요구이며 필요라고 인식되고 있다. 온전한 실천까지는 갈길이 멀지만 적어도 이념적인 또는 규범적인 차원에서는 성과주의가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성과주의는 공평성의 실질적인 구현 등 수많은 효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과주의에 이점이 많은 만큼 약점도 많다. 오용·악용의 소지가 큰 원리이다. 성과주의 실천의 약점과 성과관리의 애로는 대단히 많다.  그걸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고 정치권의 '백서파동'에 연관되는 이야기 한두 가지만 보려고 한다.

   우선 인과관계 확인의 애로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인과관계란 행위와 그 결과(성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말한다. 업무수행과 그 성과 사이에 끼어드는 개입변수가 많기 때문에 업무수행과  성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고 논증하기가 어렵다. 성과의 정확한 측정부터 힘들다. 예컨대 어떤 농부의 논농사가 풍작인데 그 원인이 농부가 부지런하게 일한 때문인지, 새로 개발된 비료의 공급이 적정했기 때문인지, 기온이 적정했던 때문인지, 강수량이 적정했기 때문인지 결론 내리기 어렵다. 정치활동에서의 성과평가에서 봉착하는 어려움은 훨씬 더 커진다. 선거에 왜 졌는지 그 원인을 엄격하게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원인 규명은 그저 주관적 주장에 불과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과측정의 두 가지 축이라 할까, 두 가지 기준이라 할까 하는 것은 행위의 목표와 행위의 결과인 성과이다. 이 두 가지가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다. 목표가 모호할 때도 많고 성과가 모호할 때도 많다. 정치적 행위의 목표는 더 모호하다. 그 성과도 그렇다. 모호한 성과의 측정과 평가는 어렵다. 선거의 당선자 수와 같이 객관적이고 분명한 성과는 측정하기 용이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선거운동의 진정한 성과는 당선인을 만들어내거나 실패한 포괄적 효과이다. 그걸 측정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여기에 정치의 아귀다툼, 견강부회, 아전인수의 아주 큰 소지가 있다. 멀쩡한 백(흰색)도 흑(검은색)이라고 우길 수 있는 사람들이 색이 불분명한 대상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억지와 다툼을 벌이겠는가.

   성과관리는 미래의 행동개선을 지향하도록 고안된 것이지만 그 실천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과거지향성을 노출하게 된다. 지나간 실적에 초점을 맞추고 과거지향적 책임을 따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책과 같은 경험을 거울삼아 미래행동의 개선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상황은 급속히 변한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도 적실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특히 정치인들은 지난 잘못의 책임을 따지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다투는 일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선거패배에 관한 백서 발간은 세력다툼과 갈등 야기의 도화선이 되고, 백서의 건설적 활용은 흐지부지 된다. 특정인의 책임을 묻고, 그를 힐난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하책이며 큰 저항을 불러올 뿐이라고 하는 말은 개혁이론의 원론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치에서 패배원인 평가라는 것은 특정인의 책임을 물어 축출하는, 팽(烹)하는 일을 의미할 뿐이다. 행동을 주도한 사람에게 죄를 씌워 축출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할 수 있다. 축출하려는 세력과 저항하는 세력이 부딪쳐 싸움하느라 진이 다 빠진 뒤에는 미래 개선에 관한 논의를 할 여력이 없는 꼴이 되는 것 같다.

   성과주의라는 선한 원리가 몰염치한 정치에 굴러들어가면 만신창이가 되고, 악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성과주의의 약점이 극대화된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성과주의의 타락은 민주적 정치질서의 운행에 걸림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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