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백인 노예상인(奴隸商人)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포획해 미주대륙에 팔아넘겼다는 역사의 기록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노예상인들 때문에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아프리카 국가의 한 시민단체가 노예사냥의 잔학상을 세계가 보다 생생히, 오래, 희망컨대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흑인노예동상을 세계도처에 세우는 운동을 전개했다. 세계 주요 도시들을 흑인노예동상으로 뒤덮을 기세였다. 노예를 가장 많이 사냥해 간 나라의 대사관 입구에도 흑인노예 동상을 세운 것은 물론이다. 그 운동이 비인간적인 백인들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자기네 부족의 흑인노예들을 동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예동상 건립운동의 부작용은 분명했다. 흑인노예동상 건립이 자기들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선양하고 자기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알리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게 효용보다 더 큰 부작용이었다. 자기들은 노예상인들의 사냥감이 되어 노예로 팔려 다닐 수밖에 없는 미개하고 열등한 종족이었다는 “억울한”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널리, 그리고 오래오래 각인시켰을 것이다. 노예동상건립이 노예사냥 피해자들의 이른바 명예회복에 과연 도움이 되었느냐도 의문이었다. 노예상인에 대한 적개심이 극단화되어 있던 환경에서, 그리고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에 대한 동정만이 유일한 정의라고 규정되던 환경에서, 노예동상 건립이 자신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위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픽션이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만든 이야기이다. “군중의 실책에는 항상 탐욕스럽지만 어리석은 자들이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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