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8월 중순에 무더위가 한창이다. 그야말로 오뉴월 불볕더위를 실감한다. 그래서인지 혹서에 주의하라는 전화문자가 자주 온다. 정부당국에서 보내는 재난안전문자(안전안내문자)이다. 너무 자주 온다 싶다. 그로 인해 짜증을 내는 국민(행정서비스 고객)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귀찮아서 재난안전문자 수신을 차단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많이 더우면 각자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야외활동을 자제하라, 야외작업을 하려면 될 수 있는 대로 그늘에서 하라, 물을 많이 마셔라,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안부전화 드려라 등등 하나마나 뻔한 ‘경보’를 되풀이해서 듣자니 짜증이 날만도 하다. 짜증이 난다고까지는 말 못 하더라도 이런 일에 왜 행정력을 낭비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22년에 서양식 축제인 할로윈핼러윈 축제를 즐기려고 좁은 골목길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그 일에 대한 책임추궁으로 여러 공직자들의 목이 날라 갔다. 이른바 이태원참사에 대한 행정적 ․ 정치적 책임추궁은 아직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태원참사가 있은 다음 해인 2023년의 핼러윈에는 축제를 즐기려고 젊은이들이 모여들만한 거리, 골목마다 엄청난 경찰력을 투입했다. 경찰을 퍼부었다고 표현할 만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행인 반, 경찰 반”의 상황을 연출하고 행인들의 거동을 지나치게 단속한 모양이다. 언론에서는 즉각 경찰과 안전행정당국의 과잉대응을 비판하고 경찰의 축제 방해를 나무랐다. 사실 경찰의 내심은 축제를 원천봉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위의 두 가지 사례를 놓고 여러 가지 차원 또는 관점에서 전후사정을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얼핏 생각나는 대로 행정책임의 과잉이행이라는 측면의 이야기와 행정의 인상관리라는 측면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과잉적 책임이행과 인상관리는 물론 긴밀히 연관되고 표리의 관계에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관리를 위해 과잉행동을 할 수도 있고, 과잉행동의 도구로 과잉적 인상관리가 쓰일 수도 있다.
Herman Finer는 민주정부의 책임을 논의하면서 책임이행 실패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세 가지 유형이란 불이행(non-feasance), 부적합이행(불량이행: mal-feasance), 그리고 과잉이행(over-feasance)을 말한다. 과잉이행도 책임이행의 실패이며 그 해독이 만만치 않은데 그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다른 책임이행 실패유형의 경우보다 낮은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과잉이행은 책임이행의 지나침으로 낭비 등 여러 부작용을 수반하는 것이다. 다다익선인 것, 많이 할수록 좋은 것으로 평가되는 건설적 초과달성과는 다르다.
과잉적 행정책임이행의 동인(動因)에는 수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직무수행자의 순진한 열정이 저지른 실수일 수도 있다. 허다한 원인 중에 나는 국민(고객)의 과잉적 요구투입과 지나친 책임추궁에 주목한다. 행정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너무 높고, 행정의 책임이행 실패에 대한 문책이 과잉적이고 억울한 것일 때 행정인들은 과잉적 책임이행이라는 방법으로 역습에 나설 수 있다. 국민의 지나친 작용에 대해 그보다 더 지나친 반작용을 보이려는 행정의 반발현상을 놓쳐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 선진화될수록 사람들이 보다 많은 권리와 자유를 누리려 하고 책임은 멀리하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권리는 내 것이요 책임은 남의 것이라는 놀부심보가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시대는 “남의 탓 시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어느 중국인 유학생이 쓴 글에서 우리 국민의 남의 탓 특성을 지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길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만 해도 대통령 탓을 한다고 적었다 한다. 외국인 보기에 그럴 만한 현상이 지금 미만(彌滿)되어 있다.
남의 탓의 으뜸이라 할 만한 게 정부 탓이다. 이익은 내 것이고 손해는 남의 것이라고 우기는 심보를 이익의 사유화 ․ 손실의 사회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자기 행동의 이익은 자기가 챙기고 손실은 사회에 떠넘기려 하는데 사회적 책임은 정부에 귀결된다. 사회가, 국가가 책임지라는 것은 결국 정부에서 책임지라는 이야기이다. 대정부관계에서 국민이 하는 남(정부)의 탓은 끝도 한도 없어지는 것 같다. 무슨 재난이나 사고에 당해 쏟아지는 절제 없는 정부 탓은 공공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한다. 정부의 방어적 행동을 유발한다. 예방행정의 과잉대응을 유발한다.
혹서에 안전행정당국이 재난경보를 게을리 하거나 보통정도의 경보활동만 하다가 인명, 가축, 농작물 등에 혹서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면 재난경보 한 번 안 했다, 재난경보가 부실했다 등등의 비난이 빗발치고 지나친 책임추궁이 있을 거를 생각하면 끔찍할 것이다. 재난문자폭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재난안전문자를 퍼부어야 하겠다는 충동을 느낄 것이다. 너무 많은 재난안전문자로 국민을 충분히 괴롭혀서 재난안전문자가 있었다는 것을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켜 놓으면 누구도 재난경고가 없었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태원참사라고 불리는 핼러윈 축제 참사 이후의 행정대응에서도 같은 현상을 보았다. 이태원 참사 다음 해의 핼러윈에서도 경찰이 통상적인 경비만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을 것인가.
행정책임이행의 과잉 때문에 행정관료들이 비판받고 욕을 먹더라도 다치지는 않는다. 책임의 부족한 이행을 포함한 부적합이행 때문에는 욕을 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료들이 다치기까지 한다. 그러니 과잉반응의 유혹을 더더욱 뿌리치기 어렵다.
행정의 과잉대응은 그릇된 인상관리라는 차원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인상관리를 다소간에 하고 산다. 사회문화가, 사회상규가 그것을 요구한다. 옷 입는 것부터가 인상관리의 수단이 아닌가. 정상적인 보통사람들의 일상화된 인상관리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목적을 위해 거짓 인상을 꾸민다든지 각자의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친 사치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비난대상인 부정적 인상관리이다.
정부부문에서의 인상관리는 중요한 국정관리기능 가운데 하나이며 공공의 관심사이다. 공공부문 전체가 인상관리를 하고 있으며 국정홍보(Public Relations)라는 기능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기구도 있다. 민초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부문의 인상관리에도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행정의 잘못된 인상관리는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되는데, 그중에서 일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되는 거짓 인상관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 종류의 인상관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인간살이에서 모두 그렇지만 정부부문에서는 특히 더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낭비적 인상관리가 너무 많다.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을 받는 사업은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낭비적 인상관리의 한 덩어리이다. 정부에서 무슨 정책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걸핏하면 위원회를 만들고 그 운영은 흐지부지하고 마는 것도 흔히 눈에 잘 뜨이는 낭비적 인상관리의 예이다. 어떤 행사의 안전관리에 필요한, 적정 경찰인력 수보다 여러 배가 많은 경찰력을 배치하는 것도 눈에 금방 뜨이는 낭비적 인상관리이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월등히 중요하다는 믿음은 전통관료제의 병폐이다. 정치판으로 넘어가면 일 하는 것보다 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활동이 압도적이다. 이런 평가가 억울하다면 민생과 거리가 먼 정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저무는 현상을 어찌 설명하려 하는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경쟁이라는 것은 자기편이 일을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싸움 아닌가. 반대파가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려는 싸움 아닌가. 그런 싸움은 이판사판의 싸움이 되고 반도덕적인 싸움이 되고 있다. 근자에 정치판을 보면 일을 잘하기는커녕 일을 잘하는 것처럼 꾸미려는 노력조차 내동댕이친 것 같다. “우리가 맡은 책임의 이행과 동떨어진 싸움질만 멋대로 해도 우리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백성들은 언제나 넘쳐나지 않는가.” 그런 배짱인 모양이지만 염치없다. 이런 정치를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근본적 ․ 궁극적 책임이 정치인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염치 빠진 정치는 국민적 몰염치의 도구 또는 꼭두각시놀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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